백암저술
(사)임시정부대통령 백암 박은식선생 기념사업회
백암의 저술활동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1911)
박은식이 양명학(陽明學)을 탐구한 저술로 1910년 잡지『소년(少年)』제4권 2호에 특집으로 전재되었다가 후에 단행본으로 간행됨.
국한문혼용의『왕양명실기』는 정오표(正誤表)까지 합해 146쪽에 달하는 저술이다. 하지만 한문에 토를 다는 정도의 국한문혼용이기에 난해한 부분이 많다. 전체의 흐름은 왕양명의 생애를 연령에 따라 정리한 것이며, 그의 행적과 학문의 중요한 대목마다 ‘안설(按設)’형식으로 박은식 자신의 견해와 평가를 피력하기도 하고, 양계초(梁啓超) 등 선학들의 견해도 곁들였다.
이 저술에서 중요한 부분은 저자의 해석과 평가라 할 수 있는 ‘안설’이다. 박은식이 안설을 통해 밝히려고 한 가장 중요한 대목의 하나는 양지(良知)의 문제였다. 그는 양지 두 자(字)는 천계(天啓)요, 그 본체는 천리(天理)라고 설파했다. 그리고 양지에 이르는 길이 공부(工夫)라면, 공부는 본체인 양지와 분리되지 않으면서, 지행합일(知行合一) · 사상마연(事上磨鍊)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설에는 왕양명에 대한 평가도 많이 들어있다. 박은식은 “(왕양명)선생은 백세수절인물(百世殊節人物)이라, 도학가(道學家)요, 군략가(軍略家)며 정치가(政治家)며 기절가(氣節家)며 문장가(文章家)라 하니 이는 하늘이 낸 재주가 아니면 그 누가 능하겠는가”라고 평하였다.